삼국지 용의부활-한 영웅에 대한 서사시

[Movie Story]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이 있을까?  자신의 생이 다한다는 것만큼 오싹하고 서럽고 처량한 건 없는거 같다. 더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가급적 피하고자 하는게 인지상정(人之常情 )일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념 때로는 미친듯한 열정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삼국지-용의 부활을 봤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같은 영웅서사시를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상산 조자룡이라는 한 영웅의 주요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신의와 의리,  충성, 명예,신념 같은 이제 이세상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가치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지 용의부활의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지러운 전란의 시기에 촉군에 무명의 병사로 합류한 조자룡은 용맹함과 뛰어난 무술로 신임을 얻고, 조조군을 피해 달아나던 유비의 식솔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자를 1만적군 사이에서 종횡무진하며 혈혈단신으로 구해내는 공을 세우고 이후 승승장구해 오호장군의 최고 위치까지 오른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함께 하던 오호장군들중 관우, 장비, 황충, 마초도 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조자룡만 홀로 남아 마지막으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삼국통일을 위해 전장에 출전한다. 하지만 쇠약해진 국력과 내부의 배신으로 조조군에게 포위당하게 되고 조조의 손녀 조영과 마지막 일전을 치루다 생을 다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꽤나 단순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 내용과 많이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삼국지 원전 자체도 허구가 가미된 소설이라고 본다면 영화에서의 이정도 변주(?)쯤은 용인할만 하다 하겠다.

영화속의 조자룡은 의리와 충성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나중에 자신을 배신하지만 형님으로 생각하고 아끼던 나평안(홍금보)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유비의 아들을 구하러 1만 대군 사이로 홀로 나서고, 삼국통일을 이루고 말겠다는 신념과 충성심으로 나라를 위해 한평생 전장을 누비며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을 만나지도 못하고 자기삶을 희생한다.

그러한 삶이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돈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의리, 신념, 사랑도 헌신짝처럼 벗어 던져버리는 요즘 세상의 가치관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의리를 챙기고, 사사로운 물욕을 위해서 신념을 가지고 덤벼들며, 사랑도 조건화시킨다. 전문가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경제살리기"와 "뉴타운공약"같은 걸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한나라당에 대해 요즘 세태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한 "욕망의 정치"로 승리했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이제 도덕이니 고결함이니 하는건 그냥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일 뿐인 세상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조자룡이 참 안쓰러웠다. 나평안(홍금보)의 부주의로 유비의 식솔을 잃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어 나평안을 처형하려 하자, 조자룡은 고향 형님인 나평안을 대신해 자기가 유비의 가족을 찾아오겠다고 나선다. 엄청난 적군이 눈 앞에 있고 나가면 거의 죽음이 목전인데,  왜 죽을줄 알면서 자신도 아닌 다른 사람을 대신해 유비의 아들을 구하러 갔을까?  또 노년에 접어들어 후방에서 편히 쉬면 될걸 그 삼국통일에 대한 신념이 무어 대단하다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에 부득불 뛰어 나간단 말인가? 조자룡은 내 기준에서 보면 참 융통성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또 아름다워 보였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고, 또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삼국지는 용의부활은 조자룡을 통해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의리, 신념, 충성, 명예 이런 것들은 목숨을 다해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것이라고...

,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현재의 당신이 있다-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Movie Story]

지나간 사랑은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통조림처럼 덧없고 쓸쓸하다. 더블샷 에스프레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씁쓸하다. 왜냐하면 지나간 사랑, 지나간 날들은 다시 돌아오거나 되돌릴 수 없는 추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해 만약 그사람과 잘 되었더라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볼지도 모른다.

시간만 잘 맞았다면, 그때 그 일만 없었다면 혹은 그때 그것만 있었더라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지나가버린 사랑은 유통기간이 지나서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는 유통기간이 훌쩍 지나버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학생때 만난 고향 여자친구 에밀리,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뉴욕으로 와 클린턴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알게된 당돌하고 자유분방한 에이프릴, 에밀리의 친구로 우여곡절끝에 사귀게 된 지적이면서 저돌적인 여기자 섬머...


영화의 주인공 윌(라이언 레이놀즈)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세사람과 모두 엇갈리게 된다. 에밀리는 일에 대한 야심때문에 헤어지게 되고 에이프릴은 막 서로 사랑이 시작될 즈음 윌이 섬머에게 빠져서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섬머는 윌을 배신(?)하고 상처만 주고 떠난다.


세월이 흐른 뒤 윌은 어느날 우연히 첫 여자친구 에밀리와 재회하게 되고 결혼을 해 귀엽고 이쁜 딸 마야까지 두게된다. 하지만 이혼을 목전에 두고있는 윌은 딸 마야와 이런저런 옛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사람이 에이프릴이라는 걸 깨닫는다. 다행히 딸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에이프릴을 찾아가 사랑을 고백하는데.....


문득 윌이 처음부터 에이프릴과 잘 되어 결혼을 했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에밀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 마야의 존재는 아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딸 마야가 이혼을 앞둔 아빠는 불행하고 엄마랑 행복하지 않아 아빠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에 윌은 이야기한다. 나의 해피엔딩은 마야 너라고... 윌의 입장에서 보면 온 세상을 다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마야를 생각한다면 에이프릴과 잘 되지 않고 에밀라와 결혼하게 된게 잘 된 것일수도 있다. 인생이 이런 것인가 보다. 하나를 잃고 또 하나를 얻고...



또 영화 속에서 결혼이라는 건 누군가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는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데 결혼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시점에 그때에 자기곁에 있는 적당한 누군가와 결혼하는 거라고 에이프릴은 이야기한다. 그 말대로 운명같은 건 없는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고 살아가며 숨쉬는 순간 순간 우리는 어떤 운명같은 걸 찾는다. 불확실하고 아슬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 운명이야말로 우리에게 확신을 주고 누군가에게 나를 단단히 동여멜수 있는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운명을 믿는가? 100%는 아니더라도 우리 삶속에는 운명같은 그 어떤 무엇이 있다고 나 역시 믿는다.


윌은 에밀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소중한 딸 마야의 도움으로 에이프릴과 운명처럼 재회해서 다시 사랑을 하게된다. 결혼에 운명같은 건 없다는 에이프릴의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이야기가 뒤집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마야라는 하나의 해피엔딩에 다시 찾은 사랑 에이프릴이라는 해피엔딩을 하나 더해서 말이다.


해피엔딩이 하나도 아니고 두개인 만큼 그 여운과 기쁨이 해피엔딩이 하나뿐인 영화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크다 하겠다.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하다....


우유부단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일궈낸 윌과 귀엽고 똑똑한 그의 딸 마야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 에이프릴과 착해보이는 윌의 전처이자 마야의 엄마 에밀리 모두에게 행복한 앞날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은 지나가버린 사랑때문에 혹은 과거의 사랑했던 기억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야기 해주고 싶다.사랑했던 날들, 지난 기억 속의 날들, 이제 돌아올수 없는 날들, 엇갈린 인연처럼 스러져간 날들... 이 모든 것이 긴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한순간의 추억으로 밖에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기억들과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현재의 당신이 있다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