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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8.06.21] [단편] A타운에서의 하룻밤
  2. [1997.05.01] [단편] 이방인과 내국인

[단편] A타운에서의 하룻밤

[Life Story/living]
1

이제 스물하고 다섯 해를 보낸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생(生)이지만, 가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나는 흠칫 놀라게 된다.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나는 만나고 헤어지고 그랬던 것 같다. 개중에는 정말 잊기 힘든 아니 잊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변으로 비켜나가 지금은 이름과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다. 나는 본래 '운명'이니 '필연'이니 하는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단어들로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치장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A타운에서 딱 한 번 만나고 헤어졌던 그녀를 다른 곳도 아닌 천만이라는, 죽을 때까지 세어도 그 수를 다 셀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엄청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한 복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운명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또 그냥 우연이라고 해버리기는 뭔가 부족한 그 어떤 무엇이 우리 삶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2
   
"이것 봐, 코퍼럴(상병) 리! 저기 멀리 게이트가 보이지? 이제 다 왔군."
"그렇군요. 젠장, 엉덩이가 시트에 눌러 붙는 줄 알았어요. 빨리 샤워부터 하고 시원한 맥주 한 병 마시면 원이 없겠어요."
"하하하, 겨우 맥주? 군산은 처음이라고 했지? 두고 보라구, 오늘 내가 멋진 밤을 보내게 해줄 테니까. 지금까지의 피로가 그냥 싹 가실 거야!"
윌슨 하사는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을 짓고는 액셀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더 내기 시작했다. 갓 이병을 달고 자대배치를 받은 이래 줄곧 1년 반 동안 같이 일을 한 윌슨 하사는 조지아주의 애틀란타 출신으로 30살의 백인이었다. 미국인치고는 좀 둥근 얼굴에 아랫배가 살짝 나온 그는 말을 재미있게 하고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군인보다는 TV 토크쇼의 사회자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쨌든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다 중퇴하고 군에 입대한 그는 8년의 군생활 중 한국에서 근무한 게 3년이 넘었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부인도 한국 여자여서 그랬는지 쌀밥과 김치, 불고기를 즐겼고 한국 문화도 잘 알고 이해했기에 우리 카투사 사병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무척 잘해주어서 섹션의 책임자이자 상급자라기보다는 오랜 친구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8월의 불볕 태양 아래 이렇게 차를 몰고 떠돈 것이 벌써 4일째였다. 서울에 본부 중대가 있는 우리 부대는 수송 부대라는 특성상 전국 곳곳의 주요 미군 기지에 파견부대를 두고 있었고 이번 TDY(출장)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파견근무자들의 화생방 장비를 점검해주고 이상이 있으면 보수해 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NBC(화생방) 섹션에서 단 둘이 일하는 윌슨 하사와 나는 동두천에서 시작해 의정부, 춘천, 오산, 평택, 부산, 왜관, 대구를 거쳐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군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경부 고속도로는 공사 때문에 한 쪽 길이 막혀 차들이 쉽게 속도를 내지 못했고 여름 휴가 차량들로 도로가 꽉꽉 막힌 것까지 한 몫 해 당초 대구에서 대전을 거쳐 5시간 만에 군산에 도착하려 했던 것은 그냥 우리들의 생각으로만 끝났을 뿐 꼬박 7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그동안 파견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관리 소흘로 손상된 개스 매스크 3개를 교체해주고 오염된 피부를 제독할 때 쓰는 M291 키트 몇 개를 분실했다고 해서 다시 지급해줬을 뿐 일 자체는 그리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고속도로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우리는 피곤이 쌓여 몸이 말이 아니었다.
"써전 윌슨! 이제 오늘 밤만 군산에서 자고 내일 일을 마치면 서울로 갈 수 있겠군요.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이젠 지쳤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 자네가 한 일이 뭐가 있다구? 내가 4일 내내 운전하는 동안 옆에서 졸기밖에 더 하지 않았나?"
"아니, 써전 윌슨! 각 사무실에서 일일이 사람들 개스 매스크에 이상이 있는지 체크하고 서류 정리하고 한 건 누군데요?  4일 동안 그저 옆에서 커피나 홀짝거리며 뻐끔 뻐끔 담배만 피웠지 한 일이 뭐가 있다구."
"하하, 이런 내가 한 방 먹었군. 그래서 오늘 밤은 내가 한 잔 산다고 하지 않았나. 어차피 마지막 날이라 부담도 없으니까 근사하게 마셔 보자구. 나도 군산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전에 A타운이라는 곳을 간 적이 있지. 이태원하고는 좀 틀리지만 홀이 넓은 클럽도 많고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죽여 준다구. 오늘 거기로 가는 거야."
"A타운이라...  A가 무엇의 약자인가요?"
"원래는 어메리칸 타운(American Town)인데 그냥 A타운으로 부르더군."
으레 미군 기지 주위에는 미군들만 전문으로 상대하는 클럽이나 가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알고있지만 마을이라니... 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 나는 친미주의자도 반미주의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들끼리 미국인의 마을로 통용되는 곳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윌슨 하사는 잠시 내 뾰로통한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코퍼럴 리! 그렇게 이상한 얼굴 표정 짓지 말라구. LA에 가보면 말이야. 코리언 타운이 있지. 아마 자네도 들어 봤을 거야. 거기는 간판도 한국어고 거리에는 온통 한국 사람들 천지야. 미국인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지. 또 차이나타운도 그렇구. 마찬가지라구. 그냥 그러려니 생각해. 또 이상하게 이태원에 처음 갔을 때처럼 민족의 자존심이니 그런 것 들먹이지 말구."
역시 윌슨 하사였다. 내 꿍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한 발 앞서 먼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는 이태원이나 A타운 같은 곳이 우리나라에 있는데 대해 윌슨 하사가 비난 받거나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윌슨 하사에게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써전 윌슨! 코리언 타운은 A타운처럼 술 마시는 클럽들과 미군들을 상대로 몸 파는 여자들만 있는 곳은 아니죠."
내 대답에 윌슨 하사는 약간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말했다.
"나도 자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에 와 있는 미군들은 하나같이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지 않나? 가족, 친구, 애인과 떨어져 타국에서 근무하는 외로움과 스트레스 거기에 성적인 문제 같은 걸 해결해줄 분출구가 필요하지. 물론 강간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그런 머더 퍼커도 있지만 그건 그 미군 한 개인의 문제이지 그걸 미군 전체로 확대시켜서 주한미군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는거지... 만약에 한국이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내고 그 곳에 한국군 기지가 생긴다면 그 주위에도 한국군을 상대하는 곳이 생길 것이고 불미스러운 사고가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을 거야. 미군들에게 부대 주위의 기지촌은 없어서는 안 될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곳이라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나 할까..."
"윌슨 하사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입장에서 다른 나라의 군대가 와서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죠. 전 윌슨 하사  개인은 좋아하지만 미국은 너무 욕심이 많은 나라 같아서 좀 얄미울 때도 많아요...  이런 이야기해서 뭘 어떻게 하겠어요? 나라가 반으로 나누어져 있고 우리나라가 힘없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지..."
아직 미군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을 때, 나는 가끔씩 인종적인 우월감과 세계 최강이라는 뒤틀린 자의식으로 가득 차서 우리 나라를 비하하고 얕보는 태도를 취하는 조금 덜 떨어진 미군을 볼 때면 울컥 화가 치솟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군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굳이 내가 미군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본 패트리어트 미사일이나 아파치 헬기, F16 전투기, M1 에이브럼스 전차 같은 것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전쟁 억제력 측면에서 꽤 북한을 압박하는 큰 요소였으니 말이다. 한국군 장교들도 공공연히 불행한 일이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자주국방의 능력이 없으니 미국의 도움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단순하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프론티어 정신으로 예쁘게 포장해서 이것저것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미국의 제국주의 근성은 기분이 나쁘지만, 좋은 점들은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거부하고 될 수 있으면 사이 좋게 지내면서 도움 받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얻어내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미군들을 상대할 때도 정말 착하고 인간성이 좋은 미군은 가끔씩 실시되는 화생방 훈련 때 어지간하면 합격을 시켜 주고 '난 김치 냄새가 역겨워, 우리가 떠나면 너네는 북한에 당장 넘어 갈 거야'라고 주절거리는 놈은 제대로 잘 해도 몇 번 씩 개스 매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쓰게 만들고 뜨거운 땡볕에서 두터운 화생방 보호의를 입고 몇 시간씩 여기 저기 돌아다니게 만든 적도 있었다. 만약 항의를 하면 훈련에 불성실하게 임한다고 섹션 책임자에게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내가 주한 미군에 대해 내린 결론은 필요악이라는 것이었다. 있어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한 것...

군산 에어 베이스(Air base)의 메인 게이트를 통과해 빌레팅 센터에 가서 10달러씩을 지불하고 윌슨 하사와 나는 우리가 묵을 숙소로 들어갔다. 1인용 침대 두 개와 샤워실에 냉장고, TV, 에어컨...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군복을 벗고 우리는 차례로 샤워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먼저 샤워를 했던 윌슨 하사는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그 사이 자판기에서 뽑아왔는지 버드 와이저 하나를 던져 주었다.
"샤워를 한 후에 맥주가 마시고 싶다고 했지? 시원하게 들이키라구!"
가끔씩 나는 30살의 윌슨 하사가 꼭 형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식당을 가도 나를 앞줄에 세우고 일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고 어쩌다 밤에 잔 두 개와 짐빔 같은 걸 들고 내 방으로 찾아오는 그에게서는 왠지 모를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아마 내가 미군을 필요악이라고 나마 인정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와의 친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캔을 따서 한 모금 들이켰다.
"캬하! 고마워요. 이거 정말 시원하고 좋은 걸요."
"자, 빨리 마시고 나가자구. 벌써 6시야. 저녁 먹고 A타운에 가면 7시쯤 되겠군. 오늘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거야. 그냥 곱게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알겠나? 체리보이!"
"이런, 또 시작이군요. 전 싫어요. 그냥 술만 마시다가 들어 올 테니까 써전 윌슨이나 재미 많이 보도록 해요."
"이것 봐! 코퍼럴 리! 20살이 넘도록 여자와 한 번도 자보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젠장, 내가 돈까지 내준다는데 말이야. 거기에다 A타운에는 한국 여자들 뿐 아니라 필리핀 여자들도 있는데 다들 늘씬한 미녀들이라구. 아마 가면 생각이 달라질걸. 하하하!"
윌슨 하사는 서울에 있을 때도 가끔씩 주말 밤 이태원에 가서 돈으로 여자를 사서 자고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내게 섹스를 정기적으로 해 주지 않으면 성기능에 장애가 온다며 섹스도 하나의 근사한 스포츠이자 남녀간의 최고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나는 특별히 도덕적 관념이 투철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왠지 돈을 지불하고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는데 거부감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윌슨 하사는 내가 여자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아야 한다며 기회만 되면 내게 여자를 붙여주려 했다. 하지만 나는 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 운운하며 정중히 거절하곤 했다.
  게이트 앞에 있는 조그만 중국 음식점에서 윌슨 하사와 나는 간단히 요기를 하고 택시를 탔다. A타운은 캠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5분쯤 가자 파란색 바탕에 하얀 색 글씨로 어메리칸 타운(American Town)이라고 써진 푯말이 보였고 그걸 따라 우회전을 해서 조금 가다 보니 A타운이라며 기사가 우리를 내려주었다. 나는 뭔가 근사한 거리를 기대했었는데 조그만 건물들이 클럽이랍시고 궁색맞게 옹기종기 모여있을 뿐 A타운은 지저분하고 좁고 이태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대충 마을 안의 거리를 둘러보니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클럽 20개 정도와 노래방, 음식점 몇 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가 첫번째로 들어간 클럽은 뉴욕 클럽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서른평 남짓한 홀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줄을 맞춰 놓여있었고 중앙에는 스테이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직 초저녁인데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 4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와서 주문을 받았다. 술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기타와 하모니카 음이 섞인 컨트리 송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거리는 윌슨 하사는 기분이 몹시 좋은 듯 했다.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내일 일정과 남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내일이 마지막이라 속이 시원하다는 눈빛을 지으며 때맞춰서 나온 맥주를 마셨다. 나는 망나니 같은 미군이 아닌 윌슨 하사 같은 좋은 사람과 같이 일을 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윌슨 하사가  미국으로 언제 떠날 것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알기로는 올 해 12월이 그의 해외 근무가 끝나는 때였다.
"써전 윌슨! 그런데 12월이 되면 한국을 떠날 건가요?"
"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네. 글쎄,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사람들이 좋고 좁기는 하지만 이 나라가 꽤 마음에 든다구. 거기다 피둥피둥 살찐 돼지 같은 미국 여자들보다 한국 여자들이 더 좋고, 더군다나 내게는 쟈니가 있으니까 여기에서 다시 한국 여자와 재혼을 해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국 근무 기간을 연장해서 1-2년쯤 더 있다가 갈까봐."
"그럼, 제가 제대할 때까지 같이 일하겠군요."
"그런 셈이지. 왜, 좋은가?"
"좋기는요? 지겨워서 그렇지. 2년 동안 거의 날마다 사무실에서 똑같은 한 사람과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요? 윌슨 하사가 늘씬한 금발의  미녀나 된다면 모를까."
"하하, 좋아. 그럼 계획했던 대로 12월에 당장 떠나도록 하지. 혼자서 잘 해보게나. 친구! 내 후임으로 성질이 고약하고 멍청한 녀석을 하나 부탁해놓고 갈 테니까."
"안돼요. 써전 윌슨! 농담이라구요. 그냥 헤어지기 싫으니까 그런 거죠... 그런데 쟈니는 한국으로 불러 올 생각 없어요? 계속 그렇게 그냥 미국에 놓아 둘 건가요?"
윌슨 하사에게는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5살의 쟈니라는 아들이 있었다. 사진으로만 본 적이 있는 쟈니는 한국 사람의 피가 섞여서 그런지 윌슨 하사와는 달리 피부도 적당히 구릿빛을 띄고 있었고 얼굴에서도 동양인의 특징이 금방 드러났다.
"나도 쟈니 생각만 하면 괴롭다네. 지금 아버지 집에서 누이와 어머니가 같이 기르고 있긴 하지만 내 자식이 아닌가? 하지만 쟈니를 한국에 데려온다 해도 내가 일하는 동안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쟈니를 위해서라도 빨리 재혼을 해야 될 텐데 말이야."
나는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는 윌슨 하사를 바라보면서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병이 다 비어 버리고 윌슨 하사는 맥주를 더 시켰다.
"내가 자네한테 왜 이혼했는지 말 한 적이 없었지?"
그랬다. 윌슨 하사는 쟈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이혼한 아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자신이 밝히지 않는 이상 굳이 물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항상 덮어두곤 했었다.
"내가 24살, 동두천에서 2년 동안 근무할 때 아내를 만났지. 어느 클럽에서 일하던 여자였는데 그 때는 서로 사랑했으니까 결혼을 했고 난 미국으로 돌아갈 때 그녀를 데리고 갔다네. 하지만 군인이라는 직업이 그렇게 속 편한 건 아니지. 그 때는 전투 보병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훈련을 나가면 몇 달씩 집을 비울 때도 있었으니까. 아내는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서 외로웠나봐. 자꾸만 한국으로 가자고 졸라대곤 했었다네. 그런데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어느 날 부터인가 나는 항상 술에 취해있고 신경질만 내는 아내를 보게 되었지. 쟈니를 생각해서라도 난 그녀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한 번은 콜로라도에 한 달간 야전 훈련을 떠났다가 예정보다 이틀 일찍 돌아오게 된 때가 있었지. 집에 들어오니까 3살 난 쟈니는 거실에서 혼자 큰 소리로 울고 있는 거야. 나는 놀래서 쟈니를 얼른 품에 안고서 달래주었지. 처음에는 쟈니를 혼자 놓아두고 외출을 한 아내한테 너무나 화가 나서 잘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니 침실에서 음악 소리가 나더군. 난 쟈니를 안은 체로 침실로 가보았어. 방문을 여니까 어떤 한국 남자와 아내가 벌거벗은 체 한창 재미를 보고 있더군. 둘은 코카인까지 한 듯 했어. 흐리멍텅한게 정신이 거의 없어 보였으니까. 내가 온 지도 모르더군. 나는 쟈니를 쇼파에 내려놓고 벽에 걸려 있는 사냥용 장총을 집어들었지. 총에 총알을 집어넣고 장전을 한 뒤 방문을 발로 걷어차고 다시 침실로 들어갔어. 그리곤 침대에 총 한 방을 쏘았지. 그제야 둘은 내 존재를 알아차리더군. 난 그 머더 퍼커를 거의 반 죽을 정도로 흠씬 패줬지. 아내는 부들부들 떨면서 한 쪽에서 지켜보고 있더군. 그 정도로 끝나길 다행이었어. 그 때 내가 만일 그 둘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면 지금 이 자리에도 없을 테니까. 그 다음 날, 난 바로 이혼 서류를 만들었어. 쟈니를 내가 기르는 조건에 위자료를 얼마간 지불하기로 하고 서류에 서로 사인을 한 뒤 우린 깨끗이 헤어졌지."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픔은 사라지고 그냥 흉터로만 남듯이, 담담하게 말하는 윌슨 하사에게서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만 남은 듯 했다.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써전 윌슨! 아직도 아내를 미워하고 있나요?"
"자네 같으면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후후, 하지만 지금은 다 잊었어. 아내를 잘 돌보아주지 못한 내 잘못도 있구. 난 다만 나와 쟈니를 이해해주고 사랑해 줄 새 여자를 만나고 싶을 뿐이야."
"쟈니의 엄마를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꼭 그 여자의 잘못만은 아닐 거예요. 외롭고 쓸쓸해서 아마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제가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는 못된 미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전체를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윌슨 하사도 엑스 와이프(ex-wife) 때문에 혹시라도 마음 한 구석에 한국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그런 것 있으면 안돼요. 미군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 한국 사람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으니까요. 알았죠?"
"꼭 어른처럼 말을 하는군, 아직 총각 딱지도 떼지 못한 어린 친구가 말이야. 하하! 리! 난 한국이 좋아.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걱정하지 말게나. 자, 우리 이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술이나 더 마시자구!"
"좋지요. 신나게 한 번 마셔보자구요!"

우리는 뉴욕 클럽에서 나와 그 뒤로 오리엔탈, 영11, 파라다이스, 킹 클럽 등등 10여군 데를 돌면서 계속 술을 마셨는데 어느 정도 밤이 깊어져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클럽마다 무대 한가운데에서 수영복만 입은 여자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는데 다른 클럽과 달리 사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클럽은 춤추는 여자들의 생김새가 왠지 보통의 한국 여자들과는 달라 보였다. 나는 윌슨 하사에게 물었다.
"써전 윌슨! 여자들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한국 여자들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제대로 보았군. 저들은 필리핀 여자들이야. 얼굴형이 좀 둥글고 피부색이 약간 더 검은 것 같지 않나?"
필리핀 여자들이라니, 왜 저들은 이 먼 한국땅 기지촌 한 쪽에서 성조기가 그려진 수영복을 입고 춤을 추고 있단 말인가? 나는 이상한 생각에 그들을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3명의 여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제일 오른쪽에서 춤을 추는 여자는 뭔가 이런 데서 춤추는 여자들과는 왠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옅은 화장을 한긴 머리에 앳돼 보이는 얼굴의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윌슨 하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뭘 그렇게 얼이 빠져서 바라보고 있는 거야? 오호라! 저기 제일 오른쪽 여자군. 흠, 괜찮게 생겼군. 저 여자가 마음에 드나 보지? 좋아. 잠깐만 기다리라구."
항상 뭔가를 정하면 주저 없이 해버리는 윌슨 하사는 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주인 여자를 불렀고 귓속말로 뭐라고 하며 달러 몇 장을 건네주었다. 50대로 보이는 늙은 여자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는 자리를 떴다.
"잠깐만 기다려 보라구. 춤을 다 추고 나면 여자 둘이 우리 테이블로 올 거야."
"써전 윌슨! 전 그냥 보기만 했을 뿐이에요. 왜 그랬어요?"
"허! 아무 소리 말고 오기만 기다리라구."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긴장이 되었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왠지 끌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머쓱해서 그냥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데 여자 두 명이 우리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난 당황해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넉살 좋은 윌슨 하사가 먼저 말을 했다.
"반갑군요.아가씨들! 나는 윌슨이고 이 친구는 리라고 하죠. 흠, 거기 왼쪽 아가씨는 여기 리를 보도록 해요. 이 친구가 아가씨를 마음에 들어 하니까. 하하!"
그녀는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는 내가 평소 듣던 것과는 조금 다른 액센트와 억양의 영어로 말을 했다.
"미국인이에요? 꼭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데..."
"바로 봤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음, 한국 군인인데 미군에 소속되어 일을 하고 있죠."
나는 예쁜 여선생님 앞에 선 수줍은 학생처럼 약간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그렇군요. 저처럼 억양이나 발음이 이쪽 미군과는 좀 다르군요."
가까이에서 보니 그녀는 꽤 짙은 눈썹에 큰 눈, 오똑한 코에 얼굴은 잡티 하나 없었고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는 술을 더 시키고 조금은 어색한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윌슨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불렀다. 홀의 한 쪽으로 가서 그는 지갑을 꺼내고는 50달러 짜리 지폐 몇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난 그만 여자와 함께 나가겠네. 내일 아침 8시에 숙소에서 보자구. 자네가 내 호의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알겠나? 체리보이!"
그리고는 다시 테이블로 가서 여자와 함께 일어났다. 자리를 떠나면서 윌슨 하사는 큰 소리로 한 마디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돈 씽크, 버디! 져스트 인죠이 투나잇!(Don't think, buddy! Just enjoy tonight!)"
나는 내 맞은 편에 앉아있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 약간 변하는 걸 바라보며 무안해짐을 느꼈다. 얼마 후 그녀는 내 동의를 구하는 듯 잠깐 내 얼굴을 보더니 그만 일어나서 나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해있었는데 그녀와 함께 한 뒤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멀쩡해지는걸 느꼈다. 그녀는 내 손을 가만히 잡고는 울긋불긋한 네온 간판 아래 사람들로 넘쳐나는 좁은 골목길 사이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손만 잡은 체 아무 말없이 갔지만 나는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이 떨리는 걸 느꼈다.

방은 그렇게 크지 않았고 1인용 침대 하나에 작은 냉장고와 간이 옷장, 화장대, 선풍기가 전부였다. 그녀는 이제 어떻게 할거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녀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이름이 뭐지요?"
"이름이 그렇게 중요 한가요? 여기에서는 다들 신디라고 부르지요.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구요. 그런데 한국 사람은 처음이에요. 하지만 왠지 당신은 이런 곳을 찾아다닐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원래는 서울에 부대가 있는데 잠깐 군산에 출장 왔다가 여기 오게 되었죠. 내일 다시 돌아가야 해요. 그런데 필리핀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사람 사는데 꼭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때로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게 인생이잖아요. 보다시피 전 돈을 벌려고 왔어요."
살다 보면 그냥 모른 체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때였는데 나는 쓸데없는 질문을 한 것 같았다.
"꼭 이런 식으로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죠? 맞어요. 저도 처음에는 몰랐으니까. 생각보다 액수가 큰 돈을 주고 그냥 관광 업소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걸로 알고 왔는데 오고 나니까 그게 아니었지요."
"미안해요. 전 그냥 별 생각 없이 물었던 건데..."
말하는 것이나 생김새를 면면히 살펴보아도 확실히 그녀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 흔한 그렇고 그런 여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짤막하지만 나는 그녀를 통해 필리핀에서는 영어와 따갈로그(Tagalog)라는 두 가지 말을 사용한다는 것과 한국과는 1시간의 시차가 난다는 것, 약 7000만 명의 인구, 고온 다습한 기후, 스페인과 미국에 지배를 받았던 역사 같은 단편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고 했다. 별로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휴학을 하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 집안도 돕고 학비를 벌려고 했던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밤은 더 깊어만 가고 그녀도 나에게 싫지 만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녀가 내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물었다.
"여자 친구는 없나요? 당신은 인상도 좋고 다정다감하고 꼭 여자 친구가 있을 것 같은데?"
"있었는데 헤어졌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저한테서 떠나갔지요."
"아니, 왜요?"
"신디는 꿈이 뭔가요?"
"갑자기 꿈이라니요? 글쎄, 전에는 학교를 마치고 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싶었어요.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고 영화나 TV에서 본 미국은 필리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괜찮은 나라였거든요. 그곳에서 훌륭한 바이올니스트로 활동하는 것이 제 꿈이었죠. 하지만 여기에서 미군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왠지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잘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은 내가 목표로 한 돈을 빨리 모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했나요?"
"제 여자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죠. 어느 날 오랜만에 부대로 찾아온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회사에서 자꾸만 어떤 사람이 자기한테 접근해오는데 싫지만은 않은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제 여자 친구는 내게 꿈이 무어냐고 물었었죠. 저는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 말을 했는데 여자 친구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넌 꿈이 참 작구나라는 말을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갔거든요. 아마 제 꿈에 실망했었나 봐요."
"그래요? 꿈이 무엇인데요?"
"제 여자 친구처럼 듣고 나서 웃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음, 제 꿈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이었죠. 누구나 한 번 읽으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글 말이에요. 아마도 제 여자 친구는 내가 어떤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었나 봐요. 남들이 다 인정해주고 돈과 명예가 함께 하는 그런 것들 말이에요. 좀 지나치게 현실적인 여자였죠. 그런데 한 가지 우스운 건, 전 항상 제 꿈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넌 꿈이 참 작구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꼭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더라구요. 그 꿈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건데...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글만 쓴다고 해도 이루기 힘들 거에요."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아! 정말 멋진 그리고 큰 꿈이군요. 제 꿈과는 좀 다르지만... 그런데 지금도 그게 꿈인가요?"
"아뇨, 그 일이 있은 후로 생각을 바꾸었어요. 다른 거라면 아무거나 좋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글을 쓴다는 따위의 그런 꿈은 가지지 말자. 뭐, 대충 그런 걸루요."
그녀는 한 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하이페츠가 연주한 비탈리의 샤콘느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바이올린 연주곡인데  오르간 전주로 시작해서 바로 이어지는 바이올린음은 비장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무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그런 곡이죠. 당신의 방금 대답은 꼭 그 비탈리의 샤콘느를 듣는 것 같아요. 그 여자를 참 많이 사랑했었나 봐요. 그런 대답을 하다니... 글쎄, 당신은 뭔가 좀 특별한 사람 같아요. 전 지금까지 제가 살아가는 것도 벅차 남자 친구 같은 것은 없었지만 후에 남자 친구를 사귄다면 당신 같은 사람과 사귀어 보고 싶은 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쑥스러워 그녀로부터 눈길을 돌리려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내 얼굴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며 입술을 가져왔다. 그녀의 약간 거친 숨소리와 입김,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짙은 플로랄향에 나는 아득해지는걸 느끼며 그녀를 꼭 안고는 길게 키스를 했다. 하지만 왠지 오늘 밤 그녀와 잠을 자서는 안된다는, 그것은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디! 전 당신과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신디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가만히 누워 있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겠죠?"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품에 안겼다. 얼마 후 그녀는 잠이 들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알퐁스 도데의 '별'이란 소설에 나오는 양치기처럼 곤히 잠든 신디를 밤새도록 지켜주었다.   

3

"1년 만인가요?"
영풍문고에서 책 몇 권을 사들고 나오던 나를 가로막으며 던진 그녀의 첫마디였다. 나는 잘못 배달된 편지를 받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머리를 그렇게 길게 하고 있으니까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제대 했나보죠?"
"정말 뜻밖인데요.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난 내 목소리가 어색함으로 나무토막처럼 조금 딱딱하게 굳어있는 걸 느꼈다. 갑자기 그녀가 내 손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그렇게 바쁘지 않다면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다시 만나게 된데 대한 제 반가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때요?"
  헤븐(Heaven)이라는 이름을 가진 까페에서 그녀는 헤이즐럿을, 나는 마운틴듀를 시켰다. 그녀는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약간 지친 듯한 어두운 그림자가 거미줄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때론 작은 미소 하나가 백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서울에는 무슨 일이죠? 정말 깜짝 놀랬어요. 군산하고 여기는 꽤 먼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이런 것이 인생 아닌가요? 어쨌든 참 반갑군요."
"저도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너무 반가운걸요.그런데 서울로 옮겨왔나요? "
"그런 건 아니구, 이제 한국을 떠나게 됐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서류도 처리하고 비행기표도 끊고 일 처리할게 있어서 서울로 왔죠."
"아! 그래요? 축하해요. 이제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거군요."
"아뇨, 필리핀이 아니라 미국으로요..."
나는 그녀의 처지에서 그녀가 미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약간 어색한 침묵을 깨트리려는 듯 그녀는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군산에서 미군을 한 명 알게 되었죠. 토마스라고 1주일 전에 결혼했어요. 법적인 서류 작업도 끝냈고 3일 후에 시카고로 갈 거예요. 그 사람 집이 거기에 있거든요. 그 곳에서 다시 학교를 다니고 음악을 할거에요."
그녀는 그 말로는 뭔가 부족한 걸 느꼈는지 토마스라는 미군이 자신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너무 잘해준다며 자신 역시 미국으로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 한 거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이야기는 그녀가 내뿜는 하얀 담배 연기처럼 공허하게만 들렸다. 갑자기 그녀는 뭔가 불현듯 생각난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날 생각나요? 당신 정말 너무했어요. 그렇게 가버리는 법이 어디 있나요? 나, 다음 날 아침에 많이 울었어요. 당신이 남기고 간 50달러 짜리 지폐 3장, 내게는 정말 큰돈이었지만 그냥 찢어 버렸죠.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던 그 때의 생활에서 당신과는 정말 짧은 만남이었지만 잊을 수가 없었어요. 저도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날 새벽 고이 잠 든 그녀에게 인사도 없이 50달러 지폐 3장만 방에 남겨두고 떠났었다. 다음 날 아침, 창가로 들어오는 아득한 햇살 앞에서 나는 그녀에게 잘 있으라고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나는 한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윌슨 하사는 내가 여자를 알게 돼서 그런다고 의미 있는 눈빛을 보내며 그런 여자는 하룻밤이면 족하다고 빨리 잊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그냥 주말에 군산으로 다시 한 번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은 그냥 생각으로 그쳤을 뿐 그러다 그녀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만약 그 날 아침, 내가 당신의 얼굴을 보고 짧은 키스를 한 번 더 나누고 잘 있으라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면 그게 어떤 대단한 의미 있는 일이라도 되었을 것 같아요? 전화번호를 교환해 가끔 전화하고 서로 만나고 그랬으면 뭔가가 이루어졌을 것 같냐구요? 그건 그냥 하룻밤으로 족한 만남이었어요. 당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잖아요!"
나는 나도 모르게 거칠어지고 높아진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나는 그 때 그녀를 미국으로 데리고 갈, 아니 미국이 아니더라도 그녀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 줄 힘이 없는 그저 뭔가 아름다운 글 하나를 남기고 싶어하던 하나의 몽상가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작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 슬펐죠..."
이렇게 해서 그녀와 나의 인연은 그 결말을 본 것일까. 그 뒤로 우리의 대화는 김빠진 맥주처럼 시들해졌다. 나는 6개월 전 제대를 해 친척집에 있으면서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과 다음 학기에 복학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녀는 3주전에 서울에 왔고 시카고에 관한 책을 구하러 영풍문고의 외국어 서적 코너에 오던 길이었다고 했다. 나는 문득 윌슨 하사가 생각났다. 윌슨 하사는 끝내 내가 제대할 때까지 같이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중사로 진급하면서 부산에 있는 화학대대로 옮겨갔고 거기에서 근무하다 한국여자를 만나 내가 제대할 무렵 미국으로 떠나갔다. 그가 가기 전에 서울에서 그의 부인과 같이 저녁을 함께 했는데 둘 다 잘 어울리고 그 여자도 괜찮아 보였다. 나는 신디가 말한 토마스란 미군도 윌슨 하사처럼 좋은 사람이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4

세상을 살다 보면 그것이 우연이었던 필연이었든 간에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그런 사람이 있다. 헤븐(Heaven)에서 나오면서 나는 신디와 나의 만남이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천국(Heaven)에서 나오고 나니까 다시 또 현실이군요.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그녀는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말을 했다.
"그래요. 잘 가요. 미국에서의 생활, 행운을 빌께요!"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을 했다.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녀가 까페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적어 놓은 내 전자우편 주소와 전화 번호가 담긴 메모지를 꺼내고 싶어서 였다. 그 순간 그녀가 손을 내밀며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나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메모지를 미처 꺼내지 못하고 그냥 빈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하얀 안개꽃 같은 엷은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뒤로 돌아섰다. 나도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몇 발자국을 걸었다. 그러다 나는 불현듯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바쁘게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나는 길 잃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한동안 가만히 서있다가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구깃구깃해서는 길 한 쪽으로 흘려 보냈다. 그 구겨진 메모지가 굴러가다 누군가의 발에 밟히는걸 보고 난 꼭 내 몸이 짓밟히는 것 같은 아픈 통증을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온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며 받아들이고 있는 이 아픔이 곧 생(生)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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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방인과 내국인

[Life Story/living]

잠결에 누군가 방문을 쾅쾅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니 맞은 침대에서 자고있는 카나솔라는 손하나 까딱 않고 세상 모른체 자고 있었지만 역시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여니 막사 건물 관리자인 헌터 하사가 서있었다.

헤이, 코퍼럴 ! 얼럿이야. 본부중대 건물 뒤에서 집합한다. 필드 유니폼에 더플백,앨리스팩 모두 챙겨서 있도록.”

며칠 전부터 작전을 나간다는 말이 있더니만 결국은 불시에 중대 야전 훈련이 실시되는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복도를 뛰어다니며 방문을 두드리며 얼럿을 전하는 소리,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 소리로 막사 건물 전체가 요란 했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막상 갑자기 비상사태에 돌입하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만약 이게 실제 전시상황이라면 이보다 혼란스러울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더욱 긴장이 되었다. 사이 어느새 카나솔라도 일어났는지 부시시한 얼굴로 졸린 눈을 껌벅거리며 내게 무슨 일이냐는 눈짓을 보냈다.

이봐! 카나솔라,얼럿이야. 빨리 서두르라구. 완전군장으로 본부 중대 뒤에서 집합이야.”

이런 젠장! 한창 엘리나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갑자기 얼럿은 뭐람!”

그렇게 투덜거릴 시간 있으면 군장이나 하나 싸는 좋을걸. 더플백, 앨리스팩은 장난으로 있는 아니야.”

뉴욕 출신으로 우리나라에 이제 2개월 19세의 카나솔라는 같이 방을 쓰게 이래로 엘리나라는 자신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미군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순정파라고나 할까 어쨌든 방안을 온통 엘리나의 사진으로 도배해 놓았는데 금발의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내가 봐도 괜찮아 보였다.

알았어.알았다구! 코퍼럴 김은 여자친구도 없어? 사랑으로 불타는 사나이의 뜨거운 가슴을 모르다니 말이야. 하긴 코퍼럴 김은 자기 나라에 있으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 마음만 먹으면 만날 있겠다 이런 기분도 모르겠지. 정말 오랜만에 꿈에 나타난 거였는데 말이야....”

카나솔라는 군복 상의를 걸쳐 입으면서 못내 아쉬운 말을 했다. 나는 군복을 더플백을 챙기며 마디 해주었다.

그러길래 너네 나라에서 여자 친구랑 얌전히 있지 하려고 군인이 되어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이냐! 군대란 원래 그런 거야. 알겠어? 프라이빗!”

카나솔라는 조금 투덜거리다 결국은 풀에 지쳐 입을 다물고는 군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날이 아직은 어두워 처음에는 몰랐는데 문득 밖을 보니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비가 내리고 있었다. FTX 비라, 갑자기 긴장감과는 다른 왠지 모를 미묘한 서글픔이 가슴을 차고 올라왔다.

카나솔라, 좋게도 밖에 비가 내리고 있어. 장비들 방수포에 담아 넣고 나가기 전에 우의 입도록 !”

흩날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본부 중대 건물로 달려가니 여기 저기에서 다들 허겁지겁 나온 사람들이 초췌한 얼굴로 하나 모여들었고 ARMS ROOM에서는 벌써 무기고를 관리하는 염상병이 M16 M249분대 자동화기, COMMO 등의 장비를 나눠주고 있었다.

종원! 총부터 . 받고 NBC장비 챙겨놔야 겠다.”

,. 알겠습니다. 웨펀 카드 주십시요.”

M203 유탄 발사기가 장착된 M16 소총을 지급 받고 나는 재빨리 사무실로 가서 내가 맡고 있는 NBC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M8 화학 경보기, AN/VDR 방사능 탐지기 각종 화생방 장비를 박스에 넣은 밖으로 나오자 무기 지급이 끝나고 소대별로 대형을 갖추어 집합해 있었다. 대형에 줄어 맞추어 서자 중대장인 드래퍼 대위가 나타났다.

비가 오니 시원해서 좋군. 어떤가? 그렇지 않나?”

예스,!”

철모를 타고 흘러내리는 비를 맞으며 모든 중대원이 소리로 대답을 했다.

이번 FTX 지난 번의 대대야전훈련과는 달리 우리 본부중대만의 훈련이다. 1,2소대는 소대장들의 지휘 아래 각각 4대의 험비와 1대의 트럭에 나누어 타고 모든 장비를 탑재한 OO지역으로 출발한다. 일정은 3 4일이 것이다. 훈련기간 동안 다들 재미 보도록. 해산!”

사실 내가 속한 부대는 수송행정 부대로 다른 여타의 부대와는 달리 조금은 특색이 있었다. 처음에 카투사 교육대에서 이병을 신병으로 곳에 자대배치를 받았을 본부중대라고 하는 곳이 25명씩의 2 소대로 인원이 50 남짓하니 무슨 부대가 이런지 이렇게 작은 규모의 인원이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덧붙여 50여명 10명인 카투사의 일원으로 내가 해야 일이란 무엇일지, 모든 궁금하기만 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사실이지만 우리 부대의 주업무는 평시에는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병참 물품의 이동을 조절하고 전시에는 본토증원군의 전개,철수,수송 등의 이동 경로 담당과 한국군 수송사령부와의 수송업무 협조를 하는 역할이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부대 규모만 작았지 실제로 하는 일은 일선 전투부대에 버금가는 역할인 셈이었다. 하지만 군인의 기본은 전투인지라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을지 포커스 렌즈, 이글 등의 대단위 작전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훈련 외에도 우리 부대 역시 직접 필드에 나가 텐트를 치고 숙영을 하는 야젼훈련이 빠질 수는 없었다. 남들은 아직 곤한 잠을 자고 있을 아직은 어두운 새벽 아침, 부대원들은 속에서 험비와 트럭에 야전식량,자동 화기,텐트 세트,통신 장비 등을 실어 넣으며 얼럿과 함께 맞이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는 2 험비에 1소대 소대장인 존슨 중사와 서플라이(공급계) 럭스 병장 그리고 이제 자대에 3 신참내기 이병과 함께 탔다. 그러자 곧중대장이 1 험비를 선두로 8대의 험비와 2대의 트럭이 행열을 이루어 캠프를 벗어나 훈련지로 떠나기 시작했다.

존슨 중사! 얼마 전부터 작전이 있을 거라더니 결국은 이렇게 나가는군요.”

, 가끔 필드에 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아? 이번 FTX 위해서 준비해 놓은 많으니까 재미있을 거야.”

작전과에서 일하는 존슨 중사는 32살로 전형적인 백인이지만 다른 미군들과는 다르게 유달리 한국을 좋아하고 카투사들과 사이가 좋았다. 그리고 그의 부인도 한국 여자라는 점도 왠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의 하나였다. 그래서 가끔 주말이면 같이 술도 마시고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 나와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헤이,프라이빗 ! 처음 나가는 FTX, 기분이 어때?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구. 좋은 경험이 될테니까.”

존슨 중사는 긴장으로 잔뜩 얼어 있는 이진수 이병을 향해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딱딱함을 풀어주려 했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새까만 이병인데다 신병인지라 군기까지 바짝 들어 굳어 있으니 내가 보기에도 보기가 안됐다.

그래, 편하게 있어라. 너도 계급 차면 익숙해지고 막상 훈련도 해보면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재미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새벽이라 도로가 한산해서 험비는 막힘 없이 쌩쌩 내달리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속에서 MRE 아침을 때우고 2시간 가다 보니  희뿌옇게 날이 밝아왔다. 안에 설치된 무전기에서 귀에 익은 중대장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여기는 당나귀 하나, 모든 당나귀는 들어라. 10 후면 OO지역에 도착한다. 도착 즉시 경계병을 세우고 진지 구축 작업을 시작 테니 그렇게 알도록. 이상!”

험비는 이제 비포장 도로에 접어들어 자꾸만 덜컹거렸고 밖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들이 빽빽한 야산 중턱의 입구를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10대의 차량이 훈련지에 도착한 것은 8 30 경으로 캠프를 떠난 두시간 만이었다. 이어 주임상사의 지시가 떨어졌다.

소대에서는 야영지 입구와 주변에 경계병을 세우고 소대장이 지시하는 장소에 팍스홀을 파고 나머지는 텐트를 가설하도록 한다.”

그래도 이제 비가 그쳐 땅이 질퍽하긴 했지만 그런 대로 일을 만했기에 분야별로 인원이 할당되고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야영지 중심에 막사로 사용할 대형텐트들이 가설되고 지휘본부로 텐트 그리고 요소 요소에 참호를 팠다. 나는 카나솔라와 경계임무를 맡게 되어 야영지 외곽으로 이동했다.

코퍼럴 ! 우리는 운이 좋은 . 그냥 이렇게 서서 경계만 서면 되잖아.”

어디를 가나 사람이란 특히 군대에서는 편한 것을 찾게 되나 보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좋아? 다른 동료들은 고생하는데?”

아니, 그런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편하잖아. 아이, 코퍼럴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한다니까... 그런데 말이야, 한국에 얼마 되지 않아 모르겠는데 코퍼럴 김은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같아? 만약 북한이 남침해 오면 어떻게 될까?”

카나솔라가 자못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글쎄,일단 지금 북한의 정세는 상당히 불안하지. 김일성이라고 알아? 전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였지, 한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가 죽은 뒤에 김정일이라고 아들이 정권을 잡았는데 지금 북한은 식량란으로 어려움을 겪고있지. 듣자하니 곳곳에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데.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너도 알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목숨을 걸고 탈출한 탈북자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거든. 아마도 북한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할 정도로 심각한가봐.”

그럼 기다리면 되겠네. 식량난으로 북한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말이야. 그럼 전쟁도 나질 않고 통일도 되는 거고... 그래?”

역시 자기 나라 일이 아니다고 카나솔라는 모든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후후,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구나. 카나솔라! 지금 북한에서는 말이야 모든 어려움이 남한과 미국 때문에 그렇게 거라고 선전을 하고 있어. 그리고 앉아서 굶어 죽거나 자체붕괴 바에야 이왕 이렇게 ,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데 전쟁이나 일으켜서 내부적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진 강경파들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해 두었으면서 나눠 주지를 않고 있지.”

, 그렇단 말이야?”

내가 보기엔 말이야. 언제 북한이 남침해 아니면 자체붕괴 버릴지 아무도 몰라. 그리고 두가지 상황 모두 우리에겐 너무 부담이지. 물론 차라리 자체붕괴가 전쟁보다는 낫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보다 좋은 것은 북한 스스로가 전쟁의 야욕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을 통해서 발전을 이룩하는 거야. 그러면서 남한은 북한을 지원해주면서 점진적으로 서로간의 경제적, 문화적 격차를 줄여가다 결국에는 통일을 이룩하는 거지. 이상의 전쟁은 안돼. 그럼 우리가 한국전쟁의 상처를 딛고 이룩한 모든 것들은 무너지고 다시는 회복할 없을 정도로 남북한 모두 서로 공멸하고 말거야. 물론 카나솔라 너는 여자친구 엘리나를 미국에 남겨두고 이국땅 어딘 가에서 쓸쓸히 전사하겠지.....후후, 이게 나의 대답이야. 어때?”

전쟁이 일어나면 정말 끔찍하겠군. 하지만 혹시라도 전쟁이 일어나도 걱정 말라구.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우리 미합중국이 너희 나라를 지켜 주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갑자기 발끈하고 화가 치솟았다. 거만한 우월주의... 미군들의 대부분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미군들도 있지만 일종의 동양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감과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라는 우월감이 겹쳐 한국이나 카투사들을 얕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주한 미군이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전쟁 억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공로는 인정하지만 결국 우리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고 우리 나라를 지키는 것은 우리 한국군과 대한민국 국민 자신이지 미국이 아닌 것이다. 나는 화난 내색을 하지 않고 카나솔라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카나솔라! 그렇다면 말이야 만약 북한이 쳐들어 온다면 너는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울 있겠어?”

카나솔라는 당황한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글쎄, 최대한 열심히 싸우려고는 노력하겠지만 선뜻 목숨까지 바칠 있겠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는 ... 우리 미국을 위해 서라면 모를까. 한국은 동맹국이지 나의 조국이 아니잖아...”

그래? 카나솔라! 하지만 달라. 기꺼이 죽을 있어. 왜냐하면 나는 나의 조국을 지키고 있고 대한민국이 없으면 자신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게 바로 미군과 한국군의 차이점이지. 비록 미군에 파견되어 미군을 위해 근무하지만 소속은 엄연한 대한민국 육군이라구. , 이래도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 같아?”

본래 심성이 착한 카나솔라는 그제서야 자신의 말로 인해 기분이 조금 상했던 눈치 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코퍼럴 , 화났구나? 미안 하다구. 그런 뜻은 아니었어. 그냥 오랜 우방국으로써 너네 나라를 도와준다는 의미였지. 다른 나쁜 뜻은 없었다구.”

아니야, 나도 잠깐 흥분했었지만 정말로 화가 아니었어. 그렇지만 그런 문제를 말할 때는 주의를 하라구. 카투사들이 제일 받고 싫어 하는 미군들이 그런 식으로 말할 때니까 말이야. 그건 그거고 지루한데 담배나 피울까?”

그래, 좋지.”

, 여기.”

나는 카나솔라에게 담배 대를 건네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를 피웠을 무전기로 무전이 왔다.

헤이, 코퍼럴 ! 써전 존슨이다. 진지 구축 작업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같다. 곳에서 MRE 점심을 먹고 계속 경계를 서도록. 그리고 30분마다 무전으로 상황보고를 한다. 이상!”

알았어요. 존슨 중사! 그런데 진지구축 작업은 잘되가요? 여기는 심심해 죽겠는데...”

뭐라구? 일부러 생각해서 편한데로 빼주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코포럴 ! 너희들이 쪽으로 부르고 다른 사람 보낼까?”

하하! 존슨 중사! 미안해요. 그냥 농담으로 말이예요.”

경계를 서는 중간에 할머니 분이 훈련장 부근으로 나물을 캔다고 들어오려다 제지 당해 돌아간 빼놓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번의 무전 보고를 하고 나니 시간이 흘러 지시를 받아 지휘 본부로부터 돌아오니 진지구축이 끝나있었다. 뒤에는 화생방 훈련이 있었다. 화학 오염 지역을 통과하고 오염된 화생방 보호의를 짝을 이루어 옷으로 갈아입는 훈련과 험비를 타고 가다 화생방 오염 표지판을 보고 밖으로 나와 규정된 시간 이내에 개스 마스크와 보호의를 입은 화학 탐지기를 들고 주변 수색에 들어가는 과정이 훈련의 내용이었다. 훈련 날에 대한 AAR(훈련 사후 평가) 있었는데 새벽에 얼럿이 발생한 집합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 것과 험비 대가 제대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 출발시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 지적되고 나머지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저녁을 먹고 간단한 교육을 받은 교대로 경계를 인원만 제외하고는 다들 텐트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러나 그것으로 날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너무 피곤해서 정신없이 골아 떨어졌다 싶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깨우는 것이었다. 모터풀에서 일하는 박일병이었다.

김상병님! 일어나십시오! 주임상사가 그러는데 지금 점프 답니다.”

점프라구? 어디로?”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고마워.”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 둘씩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더플백에 슬리핑백을 말아넣고 각종 장비들을 챙기고 있었다. 야영지를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을 미군들은 점프한다고 표현했는데 한창 곤한 잠을 자다 새벽 2 점프하는 기분이란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개인 장비를 정리하고 이제는 소형 발전기와 연결된 가설 조명 아래 다들 대형텐트에 달라붙어 텐트를 해체시키기 시작했다. 어두운 가운데서 해체를 하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정리해서 트럭에 실어넣자 중대장의 말이 떨어졌다.

모두들 차량에 탑승한다. 여기를 빠져나가 산의 정반대편으로 이동을 할것이다. 모든 차량은 헤드 라이트를 끄고 운전자는 나이트 비젼을 착용해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안전에 유의하도록. 그럼 출발한다.”

달빛이 약간 있긴 했지만 상현달이라 주위를 밝히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잠시 부대원을 실은 험비와 트럭은 깊은 어둠을 뚫고 열을 갖추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한기를 느끼면서 창을 통해 밖을 둘러보니 나뭇가지에 걸린 희미한 달빛이 느껴져 단아한 정취가 느껴지는데 존슨 중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Black bird singing in the dead of night. 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All your life you we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arise. Black bird fly into the light of a dark black night...(검은 새가 깊은 밤을 노래로 수놓네. 부러진 날개를 날려고 하네. 너의 모든 생에서 너는 이제 날아가려는 순간만을 기다려 왔겠지. 검은 새가 캄캄한 밤의 속으로 날아가네) ”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멜로디와 가사가 어우러져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존슨 중사! 무슨 노래인가요?”

“Beatles Black bird라는 곡이지. 13 동안의 군생활 동안 밤에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노래를 부르게 . 이런 때면 내가 노래 속의 검은 새가 같은 기분이 들거든...”

노래가 좋은걸요.”

흔들리는 속에서 나도 마음 속으로 가만히 나만의 노래를 부르니 나도 검은 새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산의 반대편은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이동이 끝난 1시간 걸려 다시 소형 발전기와 조명장치를 가설한 텐트를 조립하고 장비를 설치했다. 일하는 동안 모두 피곤한지 아무 말이 없었다.

날의 화생방 훈련, 밤중의 점프 때문이었을까 날이 밝아 훈련 둘째 날이 되었지만 모두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것들을 감안했는지 오전은 비교적 힘들지 않은 간단한 병공통 과목의 테스트가 있었다. 간이 통신장비의 가설과 운영 그리고 포로 취급 방법이었다. 첫번 것은 간단한 교육 뒤에 직접 실습을 통해 넘어갔지만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발생했다. 마틴 병장의 지도 아래 공터에 같이 모여 포로 수색 방법과 포로 심문, 포로에 대한 대우 등을 교육 받고 있는 중간이었다. 갑자기 미군 하나가 농담처럼 말을 했다.

이것 ! 마틴 병장! 만약 북한군을 포로로 잡게 되면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지? 그냥 놓아줄까?”

그러자 평소 카투사들을 은근히 무시해와 별로 카투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2소대의 소대장이자 인사과의 과장인 가르시아 중사가 말했다.

카투사들이 있잖아. 그런 때나 카투사들을 써먹지 언제 써먹겠어? 안그래? 하하하!”

그의 말을 듣고 갑자기 카투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부대에서 잔디깍기나 창고정리 같은 사역 나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카투사들을 내보냈다. 1소대에서 미군과 카투사가 반반씩 나온 반면 2소대는 미군이 이었을 대부분이 카투사였다. 이런 일들로 항의를 해도 때마다 자기 소대의 미군들은 바뻤고 카투사들만 여유가 있어 보냈다는 등의 궁색한 변명으로 넘어가기 일수였다. 이런 것은 간단한 예일 가르시아 중사는 여러가지로 카투사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무시로 원성이 높았고 너무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때문에 미군 중에서도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부대 최고 선임자이자 같은 인사과에서 일하는 한병장이 말했다.

가르시아 중사! ‘그런 때나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내가 틀린 했나?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사실이 그렇지 않아? 너희들은 우리 미군에게 고마워 하지도 않고 일을 시키면 불평이나 하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 우리 미국이 철수하면 한국이 안전할 알아? 당장 북한에 넘어 간다구.”

조심하시오. 가르시아 중사! 당신, 당신이 말에 대해 책임질 있소?”

아니, 카투사 병장 주제에 중사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너는 상관에 대한 예의도 몰라?”

존경 받을 짓을 해야 존중해주지 당신 같은 사람 하나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소.”

뭐라고? 좋아, 훈련 끝나는 대로 당장 한국군측에 말해 한국군에 원복 시켜버리겠다. 네가 없어도 인사과에 아무 이상없고 너같은 녀석하고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으니까.”

테면 해보시오. 나도 어차피 제대가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말년이니까. 그리고 나도 부대에 돌아가는 즉시 당신의 한국과 카투사에 대한 무시 발언을 E.O(기회균등)사무소에 정식으로 제기하겠소. 그리고 한가지 덧붙여 우리나라 속담 중에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는 말이 있소. 당신은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소. 사실  인사과에서 내가 일을 하지 당신이 하는게 뭐가 있다구.”

분위기가 냉랭해지며 극도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물론 한병장이 평소 사무실에서 가르시아 중사에게 시달림을 많이 당했고 가르시아 중사가 카투사들과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미군과 카투사가 대놓고 크게 말다툼을 적은 처음이었다. 존슨 중사가 나서서 말했다.

가르시아 중사와 한병장은 이제 그만 하시오. 훈련 나와서 같은 사무실 사람끼리 다른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소?”

사이 어느새 지휘본부 텐트 안에 있던 중대장과 주임 상사까지 누군가의 부름을 받았는지 이리로 다가 오는 보였다.

무슨 일이지?”

중대장 드래퍼 대위의 물음에 가르시아 중사와 한병장은 얼굴만 붉히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존슨 중사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중대장은 자초지종을 듣고 몹시 화가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들이야! 미군이고 카투사고 간에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면 다같이 협력해서 적과 싸워야 같은 부대원들이다. 그런데 같은 부대원부터 이렇게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이래 가지고 한미공조니 연합이 제대로 이루어 지겠나? 그리고 가르시아 중사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어떻게 되나? 한국은 우리의 오랜 동맹국이자 우방국이다. 우리가 가족,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국땅에서 여러 어려움에 불구하고 근무하는지 이유를 모르는가? 한병장도 마찬가지다. 나는 카투사도 미군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 부대원으로 생각해 왔고 그렇게 대해왔다. 그런데 상관에게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뭔가? 엄연한 지휘계통이 있고 상급자와 하급자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한다면 부대가 어떻게 되겠나?”

중대장의 호된 질책이 떨어지고 다들 아무 말을 못한 가만히 서있었다.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중대장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할테니 다들 그렇게 알고 하던 교육을 계속 실시하도록 한다.”

일은 일단 그렇게 일단락 됐지만 다들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하긴 나에게도 전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상병을 달았을 무렵 부산에 있는 캠프에 있는 우리 파견부대에 화생방 장비를 교체해 일이 있어 적이 있었다. 곳에 도착해서 일을 하려고 파견대 사무실에 들어가니 얼굴만 두번 보아 알고있던 우리 부대 소속의 스컬리라는 미군 하사가 갑자기 내게 푸샵을 30 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자기 사무실에 처음으로 오는 사람은 통행료처럼 문을 열고 들어 때마다 푸샵을 해야 다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과연 같은 미군이 왔었다면 이런 기분 나쁜 농담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다 내게 난데없이 도너츠를 내노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아니, 이것봐요. 스컬리 하사! 도너츠라니요?”

여기를 처음 오는 사람은 파견대 사람들을 위해서 도너츠를 대접하는게 관례야. 만약 도너츠를 가져 오지 않으면 김은 장비교체도 못할거야.”

저는 그런 관례는 처음 듣습니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그리고 저는 그냥 김이 아니라 코퍼럴 김입니다.”

미군의 계급 구조는 우리와 조금 달라 상병부터 하사관이 되는 것이라 상병이 되고 나면 앞에 항상 계급을 붙여 호칭을 해야했다. 그렇지만 미군들 중에는 자기들은 년씩 걸려서 진급할 것을 카투사들은 개월 만에 자동적으로 진급한다고 계급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그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카투사가 상병, 병장으로 진급을 해도 앞에 코퍼럴이라든가 써전의 계급을 붙여 부르지 않고 그냥 성만 부르는 것이었다. 스컬리 하사가 말했다.

네가 김이든 코퍼럴 김이든 신경안써. 그리고 농담하는게 아니니까 도너츠를 가져와야 네가 일을 있을거야. 그리고 지금 네게 명령하는거야.”

스컬리 하사! 당신이 명령하는게 군대와 관련된 정당한 일이라면 따르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따라야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구? 여기에서는 내가 제일 높고 내가 하라면 해야 !”

좋습니다. 그럼 나는 장비교체를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중대장에게는 스컬리 하사가 도너츠를 가져다 주지 않아 일을 못하게 그냥 돌아 왔다고 보고하겠소.”

그러자 스컬리 하사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며 발끈 성을 냈다.

그럴려면 그렇게 . 네가 하러 왔던지 간에 신경 쓰지 않는다구. 그리고 네가 겁낼 알아.”

화가 너무 그냥 바로 돌아가버리고 싶었지만 주위 사람의 만류로 일은 마치고 부대로 돌아왔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있었던 일을 먼저 존슨 중사에게 하소연 했더니 존슨 중사도 흥분해서 중대장에게 직접 보고를 해주었고 중대장은 나를 불러 직접 이야기를 듣고는 전화로 스컬리 하사에게 호통을 치고는 내게 기록으로 남는 공식적인 항의서를 것을 제안했다. 서류를 쓰게 되면은 서류는 스컬리 하사가 부대를 옮길 때마다 개인 신상 자료와 함께 계속 따라 다니게 되는데 특히 미군내에서 인종차별과 성희롱은 매우 엄격한 제재가 가해지기 때문에 그러면 스컬리 하사는 진급이라든가 기타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뻔했다. 그래서 나는 스컬리 하사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다면 항의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러자 며칠 스컬리 하사는 기차로 5시간이 떨어진 부산에서 본부까지 찾아 왔다.

코퍼럴 , 정말 미안하네. 이렇게 자네에게 사과를 하러 왔다네. 사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자네에게 그런 거였는데 기분이 나빴다면 그만 화를 풀게나.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네. 그리고 다음에 부산 캠프에 일이 있다면 자네가 전화만 한다면 숙소와 차량까지 준비해 놓겠네. 정말 미안하네.”

결국 그의 사과로 일은 일단락되고 중대장은 부대원에게 카투사의 호칭에 있어 상병과 병장에게는 앞에 계급을 붙이고 계급에 걸맞는 대우를 것을 명령했다. 오래 전의 일이긴 했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카투사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었다.

어쨌든 오전의 일로 인해 오후의 소대별 이동 기술과 소대별 방어 훈련도 분위기는 침체되고 냉랭한 가운데 끝났다. 그리고 날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오늘 하루의 훈련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중대장은 부대원 간의 단결과 화합을 다시 강조했고 다른 특별한 지적은 없었다. 이어 다음 날의 훈련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는데 다음 날은 사실상 이번 훈련의 마지막 단계로 모의 전투가 있을 거라고 했다. 1소대와 2소대가 나뉘어 마일즈 기어를 입고 소대별로 서로 적군이 되어 전투을 벌이는 것이었다. 마일즈 기어는 레이저 사격 감지 장치로 조끼처럼 생긴 옷인데 이걸 몸에 입고 총에 레이저가 나가는 기구를 장착 마일즈 기어를 향해 사격을 하면 마일즈 기어가 레이저를 감지해 소리를 내게 돼있었다. 이를테면 서바이벌 게임처럼 편을 나누어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소대의 실제 전투력을 측정할 많이 쓰이는 방법이었다.

전투는 다음과 같이 치뤄 것이다. 1소대는 우리가 점프를 하기 전의 진지로 이동을 하고 2소대는 여기에 남는다. 소대에는 깃발을 하나 주어지는 깃발은 진지의 중앙에 고정되어 있을 것이고 깃발을 먼저 차지하는 소대가 이기게 된다. 적을 포로로 잡을 수도 있고 진행 도중 전사자는 즉시 훈련지에서 빠져 나온다. 다른 질문 사항 없나?”

중대장의 말이 끝나자 동안 뭔가를 생각하던 한병장이 중대장에게 말했다.

중대장님! 가지 제안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써전 !”

내일 모의 전투에서 팀을 카투사와 미군으로 나누어 해보고 싶습니다. 항상 보면 미군에 비해 카투사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회를 통해 우리 카투사들의 실력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아니, 써전 !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결코 카투사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주 우수한 인력으로 우리 미군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는데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해 왔던 바이다. 그리고 우리는 훈련을 위해 건이지 편가르기를 하러 것이 아니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카투사는 10명이고 미군은 40여명인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중대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우리는 실제 전투를 통해서 우리 카투사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 받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인원 수는 부차적인 문제일 보다 본질적인 것은 정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병장의 다소 도전적이고 무모한 제안에 드래퍼 대위는 한동안 대답하기 곤란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존슨 중사가 나서며 말했다.

중대장님! 저는 써전 한의 의견이 틀리다고 만은 생각지 않습니다. 사실 전반적으로 미군이 카투사의 능력에 대해 얕잡아 보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고 전투에 있어서 인원수 같은 것은 문제 것이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적과 서로 인원 수를 맞춰서 싸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대장님이 허락해 준다면 저는 내일 카투사 팀에 들어가서 싸우겠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쪽에 가만히 앉아 있던 카나솔라까지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중대장님! 저도 존슨 중사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리고 저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카투사 팀에서 싸우고 싶습니다.”

, 자네들의 뜻이 그렇단 말인가? 좋아. 그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때의 야전훈련과는 조금 색다르지만 승패에 관계없이 우리 부대원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것입니다.”

이런 주임상사의 말이 덧붙여지자 중대장도 결국은 허락을 했다. 거기에다 평소 카투사들과 친하게 지내던 존슨 중사와 카나솔라를 제외한 다른 미군들도 카투사와 같은 팀에 것을 자원해와 인원 수가 어느 정도 채워져 조건이 훨씬 좋게 되었다. 결국 모의 전투 훈련의 통제를 맡게 중대장과 주임상사가 빠지고1소대는 카투사 10명과 존슨 중사와 카나솔라를 포함한 미군 9, 이렇게 19명이 되었고 2소대는 28명의 미군으로 팀이 이루어 지고 해산을 했다.

브리핑이 끝나고 텐트 쪽에서 우리는 카투사들만의 별도 모임을 가졌다.

내가 괜한 짓을 같아 너희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미군에게 끌려 다닐 수는 없다. 미국이 아무리 우리의 우방국이라 해도 결국은 다른 나라일 뿐이야. 우리 나라는 우리 손으로 지키는 것이지 결코 미국이 아니다. 승패는 상관없다. 내일의 모의 전투 훈련에서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강인하고 우리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 주자구.”

이런 한병장의 말에 누구 하나 한병장을 탓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없이 평소 가슴 속에 품어왔던 생각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격려 하고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염종원 상병이 말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는 인원 수가 적으니까 작전이 중요할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전문적인 직업 군인인 미군이 우리보다 군생활도 훨씬 많이 했고 경험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우리보다 뛰어날 뻔합니다. 작전과 계획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면 형편없이 져서 비웃음거리가 지도 모릅니다.”

그래, 상병의 말이 맞다. 감정에 도취만 돼서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제부터 작전을 짜도록 하자. 그리고 자원해서 우리 팀에서 싸우기로 9명의 다른 미군들도 우리와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미군 중에서는 존슨 중사처럼 인격과 실력을 겸비한 정말 진정한 군인도 있으니까. 진수는 가서 존슨 중사와 다른 미군들을 데려와라. 같이 의논할 있도록.”

다른 미군들도 모임에 합류하고 우리는 작전을 짜려 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번째 경계 근무에 배정이 되어 M16 무전기를 들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나가기 전에 나는 가지 제안을 했다.

이건 묘한 예감인데 내일 모의 전투 중에 아무래도 화생방 상황이 주어질 같습니다. 지금까지 날부터 화생방,무전기 이용,포로 다루기,소대를 기반으로 각개전투 기술 훈련이 있었는데 내일 모의 전투에서 모든 것을 테스트하고 평가해 보는 것이 아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것들은 그냥 있는 것들이지만 화생방 상황하에서는 재빠른 상황 판단과 신속한 대처가 각별히 요구 됩니다. 이에 대비해서 같이 연습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래, 듣고 보니 상병의 말도 일리가 있는 같다. 미리 대비해서 손해 것은 없으니까 거기해 대한 준비도 하도록 하자.”

한병장도 나의 의견에 찬성을 했고 존슨 중사도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은 반짝거리는 별들이 하얀 안개꽃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문득 처음 입대할 때가 생각났다. 세찬 겨울 바람 속에 하얀 눈이 내리던 , 긴장과 떨림 속에 훈련소로 향하던 어제 같은 벌써 1 하고도 6개월이 흘러 버렸다. 갑자기 사이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 속에 하나, 둘씩 스치고 지나갔다. 번도 군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현이를 생각하면 뭔가 가슴이 빈듯한 아픔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얼마나 사랑했던가. 이제 기억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 잊는 것은 왜인지. 그녀는 내가 대학 1학년 때부터 군입대를 하기 전까지 3 동안 사귀 여자였다. 거의 같이 붙어 다니다시피 생활을 같이 했는데 상병을 달고 나간 휴가에서 그녀는 내게 이별을 말했다. 졸업과 함께 다가 여러 가지 것들이 자기에게 너무 힘들고 부담스럽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내게는 너무 충격이었다. 일이 있은 후에 동안 방황하면서 군대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며 원망도 얼마나 했던지.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에 나를 떠난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가끔씩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이렇게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때도 있었다. 나는 다시 그녀의 행복을 마음 속으로 빌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사이 무전기로 지휘 본부에 3 정도 상황 보고를 같은 내일 카투사와 같은 팀이 되어 싸울 럭스 병장이 나와 교대를 하기 위해 왔다.

코퍼럴 , 수고했어.이제 그만 가서 쉬라구. 내일을 위해서 말이야. 자신 있지?”

그럼요, 럭스 병장! 그럼 내일 보죠.”

나는 럭스 병장에게 무전기를 넘겨주고 텐트로 돌아왔다. 모두들 잠을 자고 있었다. 작전을 어떻게 세웠는 궁금 했지만 내일 설명을 듣기로 하고 자리에 피곤한 몸을 뉘였다.

조금은 부산한 아침이었다. 훈련의 마지막 날이자 중요한 결전을 앞둔 카투사들에게는 흥분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병장에 들은 계획은 내가 들어도 괜찮았다. 동안 우리가 있던 훈련지를 살펴 보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완만하면서도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야산이라 숫자가 적은 우리로서는 매복이 가장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더구나 서로의 반대편 진지까지 가려면 거리가 되기 때문에 길목만 잡아서 기다리다 적이 지나간 뒤에서 치면 자신들의 숫적 우세함만을 믿고 방심한 밀려드는 상대 팀을 효율적으로 제압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행동이 민첩하고 발이 빠른 인원을 기습조로 만들어 험한 길을 통해 적과 마주침 없이 몰래 적의 진지로 보내 깃발을 빼앗아 최종 승리를 이끌어 내자는 계획이었다.

편의상 카투사를 주로 구성된 팀을 A소대, 미군으로 구성된 팀을 B소대로 나누겠다. 오늘 모의 전투 요령은 특별한 변동 사항 없이 어제 일러 그대로다. 다들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이루도록 열심히 싸울 것을 당부한다. 그럼 A소대는 날에 자리 잡았던 진지로 이동한다. 도착 즉시 무전으로 중대장에게 연락 있도록. 해산!”

중대장의 말과 함께 집합이 끝나고 우리는 트럭 대에 나눠 이동을 했다. 저마다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마치 진짜 싸움터에 나가는 병사들처럼 긴장해 있었다. 존슨 중사가 말했다.

이것 ! 다들 얼굴들 . 마음 편하게 가지자구. 우리는 이길 있단 말이야. 가르시아 중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구. 오늘 보기좋게 콧대를 눌러 주자구! 안그래? 카투사 친구들!”

역시 존슨 중사였다. 경험많고 노련한 그는 우리들의 기분을 달래주려고 이런 저런 농담과 걸프전에 참전했던 이야기를 주며 전투시 주의할 등도 이것 저것 알려주었다. 하지만 마음 구석으로과연 이길 있을까, 만약 형편없이 버린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하는 생각이 드는 어쩔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를 태운 트럭은 진지에 도착했다. 다들 차에서 내려 공터 복판에 모였다. 그러자 한병장이 입을 열었다.

!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의 자존심을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가 불리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다들 최선을 다하자. 우리는 이길 있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 , 승리를 다짐하는 의미에서 우리 다같이 카투사 구호를 하자.”

투사! 투사! 카투사! !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

그러자 존슨 중사를 비롯한 다른 미군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멀뚱거리며 우리를 쳐다 보기만 했다. 그래서 한병장이 구호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갑자기 존슨 중사가 미군들을 향해 말했다.

, 우리도 오늘 하루는 카투사다. 우리도 친구들과 함께 구호를 외친다. 어떤가?”

다른 미군들도 동의했고 어색한 발음이긴 했지만 미군들과 함께 다시 카투사 구호를 소리로 외쳤다. 이어서 깃발을 진지 중앙에 꽂고 무전으로 준비가 됐다고 중대장에게 연락을 했다. 중대장은 정확히 10 후에 전투를 시작할 것을 명령했다.

“3개조로 나누도록 한다. 수비조는 여기에 남아 깃발을 지키며 최후의 방어를 한다. 매복조는 즉시 이동해서 꼭대기 기슭에서 대기하고 기습조는 산의 후방을 돌아 적의 진지를 공격한다. 모든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 있도록 다들 최선을 다한다. , 그럼 각자 위치로.”

존슨 중사와 한병장의 지휘아래 조가 만들어 지고 각자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10명이 배정 매복조에 편성되었고 한병장은  3명의 최종 수비조에 그리고 존슨 중사는 6명의 기습조 리더로 뽑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상대 편보다 먼저 가서 매복을 하고 기다려야 했기에 우리는 같이 뛰기 시작했다. 기습조도 마찬가지로 상대 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길을 돌아야 했으므로 뛰어 가기는 한가지 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뛰어가다 보니 어느새 몸이 땀으로 젖어 들었다. 산의 중턱까지 올라 갔을까 갑자기 쪽에서 누군가가 튀어 나왔다. 다들 바닥에 업드려 사격을 가하려 하는데 보니 주임상사였다.

가스! 가스! 여기는 화학탄이 떨어졌다.”

모두들 갑자기 부여된 상황이라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방독면을 꺼내 착용하기 시작했다. 화생방 공격을 당하면 방독면을 9 안에 얼굴에 대고 숨을 크게 마쉰 다시 내뿜어 안전하게 착용을 해야했다. 옆에서 주임 상사의 카운트하는 소리가 들렸다.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나인, 동작 그만!”

동작을 멈춘 주위를 둘러 보니 어제 대비를 연습을 보람이 있는지 대부분이 안전하게 방독면을 착용한 였다. 하지만 역시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이진수 이병의 행동이 늦었다. 주임상사가 말했다.

프라이빗 이만 빼고 나머지는 살았다. 상태를 유지한 계속 진행하도록!”

이병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몰라 연신죄송합니다 연발하다 오던 길을 돌아가고 나머지 9명은 이어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적은 인원인데 벌써 명이 떨어져가니 너무 아쉬웠다. 거기다 방독면을 체로 뛰니 힘이 들고 숨쉬기가 곤란해 다들 수록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너무 힘이 들었지만 이래서는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마디 했다.

! 우리가 이것밖에 ? 우리가 늦어 B소대가 먼저 버리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우리가 진단 말이야! 우리가 겨우 정도야! 져도 좋아?”

상병님 말이 맞어! 우리가 무너지면 모두 끝이라구. , 힘들 내자구!”

염상병까지 옆에서 거들어 주자 다들 정신이 바짝 들었는지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다들 이를 악다물었는지 점점 속도가 빨라져 처음 출발할 때와 거의 비슷한 속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를 뛰었을까 모두들 아무 없이 정신없이 뛰다 보니 당초 우리가 계획했던 꼭대기 복판에 도달해 있었다. 조를 다시 2개로 나누어 넓게 분산해서 보이지 않는 엄페물 뒤에 자리를 잡고 매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럭스 병장은 관측을 하기 위해 갔다가 5 지나니 돌아왔다.

지금 150M 전방에서 8 정도가 오고 있다. 적이 가까이 오면 들키지 않게 가만히 있다가 적이 지나간 신호와 함께 일제 사격을 개시한다. 명씩 맡아서 발에 명중할 있도록 신중을 기하라구.”

써전 럭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28명인데 겨우 8명이 오고 있다니... 혹시 양동 작전을 쓰는 아닐까요? 팀으로 나누어 다른 쪽에서도 오고 있는 아닌지?”

코퍼럴 김의 말이 맞어. 나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구.하지만 일단은 우리가 찾아 목표부터 제거를 하고 다시 생각해보자구.”

틀림 없었다. 겨우 8명이라니 어서 빨리 다른 팀을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발견된 적부터 처치하는 밖에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수풀 뒤에 숨어 바닥에 업드려 있으니 멀리서 상대팀 명이 방독면을 오는 보였다. 척후병으로 탐색을 위해 먼저 같았다. 그는 한참 동안 면밀히 주위를 둘러 보다 다시 돌아갔다. 우리가 워낙 빨리 도착해 좋은 엄폐물을 찾아 숨은 덕에 그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같았다. 이어서 잠시 나머지 인원들이 함께 오는 보였다. 가르시아 중사는 없는 같었고 럭스 병장의 말대로 8명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그냥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10M 지나갔을 우리는 뒤에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삐삐삑하는 소리가 나면서 상대팀은 순식간에 5명이 쓰러지고 엄페물을 찾은 나머지 3명과 교전을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는지 별다른 저항 없이 쉽게 나머지 3명도 제압했다. 다시 돌아보니 우리 측에서도 제이슨 일병이 입은 마일즈 기어에서 삐삐삑 소리가 나고 있어 전사 판정을 받았다.

, 어서 빨리 다른 팀을 찾자구요! 산의 왼편으로 해서 존슨 중사 일행이 갔고 중앙은 우리가 왔으니 무방비 상태인 곳은 오른 인데 쪽으로 가는 어때요?”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코퍼럴 . 다들 가자구!”

우리는 다시 산의 오른 편을 타고 내려 가기 시작했다. 방독면을 얼굴 전체가 땀으로 뒤범벅이 같았다. 다시 산의 중턱에서 이제는 앞으로 전진하며 수색을 시작했다.

이봐. 코퍼럴 ! 우리 인원을 반으로 나누자. 이렇게 넓은 곳에서 모여 다니다간 찾기가 힘들 같아. 내가 밑으로 완전히 내려가 쪽에서 테니 코퍼럴 김은 계속 쪽에서 가도록 .”

그래요, 그게 좋겠군요.”

결국 우리는 다시 4명씩 나누어져 전진을 계속 했다. 이제는 속도를 줄여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갔다. 10 갔을 갑자기 옆에 있던 박일병의 몸에서 삐삐삑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재빨리 반사적으로 몸을 업드리며 바퀴 굴러 조그만 바위 뒤에 숨었다. 40M  전방에서 적이 사격을 하고 있었다. 인원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은 틀림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이 죽었다. 이제 나와 염상병만이 남았다. 총을 계속 쏘면서도 나는 조심해서 주위를 살피며 가는 하는 낭패감이 들었다.

김상병님! 여기는 제가 어떻게든 지연시켜 보겠습니다. 김상병님은 럭스병장 일행을 찾아 같이 B소대 진지로 공격해 가는게 어떻겠습니까?”

아니야. 그냥 우리 둘이 어떻게든 최대한으로 막아 보자구!”

아닙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여기는 뚫립니다. 명이라도 가서 빨리 진지를 공격해 깃발을 빼앗는게 낫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아무래도 염상병의 말이 맞았다. 지금 B소대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3팀으로 나누어 산의 왼편, 중앙, 오른편으로 해서 공격해 오는 같았다. 중앙으로 해서 오는 팀은 우리가 이미 제압했고 오른 편으로 해서 오는 적과 마딱트린 것이다. 아마 산의 왼편 기슭을 진로로 잡은 존슨 중사가 이끄는 기습조도 교전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염상병에게 최대한으로 지연시킬 것을 부탁한 이탈해서 럭스병장 일행을 찾아 나섰다. 10 정도를 뛰어가니 멀리 앞에서 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따라 잡은 나는 럭스 병장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고 빨리 B소대 진지를 향해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어쨌든 오른 편은 이미 뚫린거나 마찬가지라 최대한으로 빨리 B소대의 진지를 공격해야 했다. 다들 거의 뛰다시피 발걸음을 빨리 B소대의 진지에 다다랐다. 사주경계를 하려는 순간 럭스병장과 신일병의 마일즈 기어에서 삐삐삑하는 소리가 났다. 이제 3명이 남았다. 각자 흩어져서 나무와 수풀 뒤에 숨은 적을 찾았다. 공터 가운데에 깃발이 꽂혀 있고 주위의 험비와 바위들 뒤에 숨어서 5 정도가 사격을 하고 있었다. 일병이 적을 향해 다가가다가 총에 맞고 말았다. 그러자 상대팀은 점점 이동하면서 포위망을 좁혀왔다. 잠시 리차드 상병이 몸을 일으켜 적을 잡고는 역시 맞고 말았다. 이제 혼자 남은 것이다. 이제 끝인가? 가르시아 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남았다. 어서 잡아 버리자구! 빨리 빨리들 움직여!”

나는 이왕 이렇게 명이라도 잡고 죽자는 생각에 상대편을 있도록 몸을 일으켜 가르시아 중사를 향해 총을 쏘았다. 가르시아 중사의 마일즈 기어에서 삐삐삑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나에게서도 동시에 똑같은 소리가 났다. 끝난 것이다. 나는 결국 우리가 졌다는 패배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갑자기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 오며 B소대의 수비조가 하나 죽기 시작했다. 존슨 중사와 카나솔라, 박상병, 최일병이었다. 전의를 상실한 B소대의 마지막 수비는 잠시 제압당했다. 결국 우리가 이긴 것이었다. 존슨 중사 일행이 함성을 지르며 뛰어오고 나는 너무 기뻐 그들을 얼싸안았다.

, 이제 깃발을 뽑자구!”

존슨 중사의 말에 박상병이 깃발을 뽑아 들며 외쳤다.

이야! 이겼다.! ”

우리는 어린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다시 다같이 얼싸안았다. 잠시 중대장이 나타나 축하한다며 우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늘 정말 잘했다. 솔직히 중대장은 A소대가 이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카투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나는 무전기를 가지고 한병장을 부르려고 했다. 그러자 중대장이 말했다.

이미 내가 연락을 했다. 중대장이 알기로는 B소대원들은 중간에 죽고 진지까지 3명이 접근했었는데 한병장의 수비조에 의해 격퇴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실은 트럭이 오는 보였다. 우리는 트럭 주위로 몰려 갔다. 한병장이 내리자 우리는 한병장을 번쩍 들어 올려 헹가래를 주었다. 내가 군대에 들어와 지금처럼 전우애를 느끼고 감격스러운 것은 때가 처음이었다. 가르시아 중사가 다가오더니 한병장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써전 ! 정말 훌륭했네. 나도 카투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네. 그리고 어제 일은 정말 진심으로 사과할테니 풀게나.”

아닙니다. 가르시아 중사! 오히려 제가 미안합니다. 어제는 너무 흥분해서 제가 잘못을 같습니다.”

서로 사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다같이 박수를 쳤다. 사이 문득 구름 없이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스런 조국을 우리가 지킨다고 생각하니 가슴 가득 뜨거운 무엇이 차올라왔다. 이방인들도 이런 기분을 알까. 내국인만의 뜨거운 가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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