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기억하기 때문에 잊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잊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 하는 걸까?

[Movie Story]
기억하기 때문에 잊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잊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 하는 걸까?


가끔씩 지난 날들과 지나가버린 사람들을 생각할 때가 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이따금 나도 모르게 생각이 난다.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사랑을 할 때는 앞으로의 일들을 알지도 못한 체, 그저 맹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잊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걸 털어 넣는 데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헤어짐을 전제로 만나는 만남은 넌센스다. 그러나 상대가 누구이든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기에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막상 그런 순간이 자신의 눈 앞에 닥치고 나서야 허둥거리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는다. 단지 이 때는 앞서 말한 지난 날들, 지나가버린 사람들의 목록에 누군가의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이제 스물하고 여덟 해를 보낸 별로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생(生)이지만, 가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나는 흠칫 놀라게 된다.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나는 만나고 헤어지고 그랬던 것 같다. 개중에는 정말 잊기 힘든 아니 잊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변으로 비켜나가 지금은 이름과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다.


“연애소설”이라는 다소 통속적인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제목이 좀 통속적이면 어떠하랴? 우리 삶 자체가 다분히 통속적인걸... 참 오랜만에 가슴이 아프고 뭔가 텅 빈 듯한 아련한 느낌을 맛보았다. 줄거리가 어떻고, 주인공들의 심리가 어떻고, 영화 장면 장면과 주인공의 어떤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이런거다 하는 등등의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이 영화는 그냥 느끼면 된다. 굳이 분석하고 의미를 찾고 따질 필요가 없다.


현실과 소설 사이의 차이점은 뭘까? 교과서적 지식으로 보면 현실 세계에 있을 만한 일을 꾸며 적은 글이 소설이라고 배운 것 같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이나 영화는 현실보다는 조금 환상적일 경우가 많다. 요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일들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는 꽤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리 만족적인 재미 때문에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보는 이가 꽤 될 것이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은 흔히 사랑 혹은 연애라는 이름으로 치환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연애는 다분히 소설적이다. 다른 사람과는 별 의미 없는 작은 것 하나도 그 사람과라면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고 심지어 황홀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그 또는 그녀의 목소리, 어쩌다 스치는 손끝, 우연히 마주친 눈동자... 이런 사소한 모든 것들이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황홀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연애가 충분히 소설적임을 증명해주는 하나 하나의 작은 증거들이다.


영화 “연애소설”은 연애소설의 기본 줄기들을 충실히 따라갔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쉬워하고, 잊지 못하고... 지환(차태현)은 홀로 남는다. 지환은 앞으로 살아 가는 동안 내내 잊지 못하고 또 가슴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아로 새겨진 기억들은 그를 살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큰 힘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는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중에서)”라는 말도 있고, “당신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한 사랑에서 거부당하면, 수백개도 넘는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는 단 하나의 진실한 사랑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세상에는 수 많은 진실한 사랑이 있다.(레오버스카글리아의 'LOVE' 중에서)”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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