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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3.12.29] 때론 돈과 시간 모두가 아까운 영화가 있다.

때론 돈과 시간 모두가 아까운 영화가 있다.

[Movie Story]
영화 한 편에서 모든 걸 기대할 수는 없다. 화려한 볼거리, 액션, 진한 감동, 이런 저런 잔재미, 반전, 섬세한 심리묘사 등등.....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이런 여러 가지 즐거움들을 영화 한 편에서 다 맛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영화 한 편 안에서 이런 것들을 다 느끼고 볼 수 있게 하는 영화라면 10점 만점에 12-13점은 되는 정말 잘 되고 훌륭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특수효과나 볼거리가 화려하면 시나리오가 영 꽝인 경우가 많고, 감동적이거나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에서는 대체로 스펙터클한 화면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경우가 많다. 요는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나 역시 영화를 볼 때 그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하고 보는 편이다. “오아시스”같은 영화에서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하지 않고, “맨인블랙”같은 영화에서는 진한 감동 같은 걸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오늘 본 “레인 오브 파이어” 도 그런 관점에서 스펙터클한 화면과 액션 뭐 이런 것들을 기대했을 뿐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았다. 특히 감독과 배우들이 모두 한 가닥 씩 하는 사람들이었고, 예고편도 그런대로 봐줄 만 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은근히 기대를 했다. 그러나 웬걸...


알록달록 화려하게 생긴 맛나 보이는 음식을 눈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다 입 안에 넣었는데 너무 맛이 형편 없어서 얼굴을 찡그려 본 기억들이 있는가? “레인 오브 파이어”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오면서의 느낌이 꼭 그러했다. 도대체 뭘 하자는 플레이(Play)인지....


공룡하면 “쥬라기 공원”과 “고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는 “아마겟돈”같은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눈높이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관객 앞에서 보여지는 익룡의 모습과 불꽃 액션(?)은 너무 초라했다. 영화 배경은 2000년대 초, 급속도로 번식하는 익룡이 출현하고 인간과 싸움을 벌이는데 핵무기까지 사용했지만 익룡을 퇴치하지 못하고, 지구는 황폐화 되고 극소수의 인간만 살아남아 힘겹게 살아가는 2084년의 미래이다.


여기에서 나의 관심사는 인간과 익룡의 전투 장면, 화려한 볼거리, 이것 밖에 없다. 하지만 초기의 익룡이 지구를 정복(?)해가는 몇 십년의 과정을 감독은 딸랑 TIME지 표지 사진, 신문 기사와 사진 몇 개로 딸랑 처리해 버리는 참 성의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뒤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에서 익룡은 딱 2마리만 잡힌다. 그것도 석궁에서 발사한 폭탄 화살에 맞아 죽는다.(핵폭탄에도 끄떡없고 각종 최신 무기들도 두 손 들었던 그 익룡이 말이다) 탱크도 몇 대 나오지만 그걸로 전투를 하지는 않는다.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불에 타 전복된다. 찬조 출현한 헬기 한 대 역시 사람만 태우고 익룡을 유인한답시고 이리저리 오가다 쏙 사라지고 만다. 예고편에 나왔던 수백마리의 익룡은 마지막 부분에 딱 3초 정도 나온다. 그것도 그냥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으로...


맥빠지는 뻔한 스토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부분들... 다 이해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공룡 영화라는 꼬리표를 붙였으면 최소한의 볼거리는 보장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내가 돈과 시간을 들이는 만큼 어지간해서는 영화 보면서 편견을 가지지 않고 즐겁고 보고 느끼려고 하는 편이지만, “레인 오브 파이어”는 한마디로 돈과 시간 모두 열라 아까운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굳이 뭔가를 찾는다면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원하는 게 뭘까? 아니,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걸까? 그리고 영화는 무엇을 담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질문을 간만에 해봤다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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